[미래기술] 한물 간 마이크로소프트의 자기 부정을 통한 의미 있는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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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1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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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호령하던 미국의 거대 IT 기업들이 크고 작은 암초를 만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페이스북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회원 개인정보를 소홀히 다뤄 연일 뭇매를 맞고 있다. 애플은 과거 스티브 잡스 시절의 쿨함을 잃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구글은 검색 시장에서의 독점적인 지위 때문에 끊임없이 구설에 휘말린다. 아마존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단골 공격 대상이다. 이런 와중에 소리 없이 잘 나가고 있는 기업이 있다. 모두가 한 물 갔다고 여겼던 마이크로소프트다.
4월 말 발표된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근 분기 매출은 268억 달러로 이전해 같은 기간에 비해 16% 늘었고 영업이익은 23% 증가했다. 특히 클라우드 플랫폼 서비스 애저(Azure)는 전년 대비 93%나 매출이 늘었다. 클라우드 서비스와 기업용 소프트웨어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새로운 사업으로 떠올랐다. 주가는 지난 1년 동안 약 40%가 올랐다. 전문가들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90년대 이후 가장 안정된 상황에 놓여있다고 보고 있다. 페이스북이나 아마존, 구글 등 다른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리스크도 적은 편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과거 마이크로소프트의 위상은 대단했다. 한때 90%가 넘는 전 세계 PC를 돌아가게 했던 윈도라는 운영체계(OS) 덕분이다. 새로운 버전의 윈도가 나올 때마다 전 세계가 들썩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모바일 시대로 접어들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위세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고 구글이 안드로이드로 맞서는 가운데 마이크로소프트도 윈도 스마트폰을 내놓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만 쓴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뒤늦게 역시 한 물 간 노키아 휴대전화 부분을 인수했지만 이마저 결국은 정리하고 모바일 OS에서 손을 떼야 했다.
2000년대가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빌 게이츠의 뒤를 이은 스티브 발머 CEO의 리더십에도 문제가 많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세상 사람들의 관심에서 천천히 멀어져 갔다. 대신 마이크로소프트가 쳐다보지도 않았던 구글과 애플이 각광을 받으며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났을 뿐 특별히 엄청난 위기를 겪은 적은 없다. PC 시장이 축소되고는 있지만 윈도가 여전히 대다수 PC에서 돌아가고 있는 덕분이다. 그만큼 윈도는 강력한 무기였다.
발머 CEO는 2012년 한 이벤트에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윈도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모든 건 윈도 위주로 돌아갔고 윈도는 모든 것에 우선했다. 애플 아이패드용 오피스 앱을 만들어 놓고도 윈도 판매가 줄어들까 봐 내놓지도 않을 정도였다. 윈도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태양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2014년 사티아 나델라 CEO가 취임 후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변화의 기류가 읽힌다. 약 3000 단어로 이뤄진 메모에서 윈도는 10번 언급되는 반면 ‘클라우드’라는 단어는 스무 번도 넘게 사용됐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더 이상 윈도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예고하는 메모였다. 나델라가 CEO 취임 후 내놓은 첫 제품은 바로 만들어 놓고도 출시하지 않았던 아이패드 용 오피스였다. (나델라 CEO의 공감 리더십 또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재기에 큰 몫을 했다. https://blog.naver.com/businessinsight/221222192272 참조)
이후 4년이 흘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조직개편을 통해 윈도 담당 임원이 기업용 소프트웨어 및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 담당에게 보고를 하도록 했다. 회사의 모든 기능이 윈도 위주로 돌아가던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엄청난 변화다. 회사의 정점에 있었던 윈도가 일개 사업부로 전락한 순간이었다.
사실 윈도의 추락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10년 마이크로소프트 전체 매출의 28%를 차지했던 윈도 매출은 이제 전체의 16%에 지나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 내 매출 순위도 오피스와 서버 및 클라우드에 이어 3위다. 스마트폰을 포함하면 전 세계에서 윈도를 운영체계로 하는 컴퓨터는15%로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를 내려놓지 못한 건 역설적으로 윈도가 너무 큰 성공을 가져다줬기 때문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를 조금 더 일찍 버렸더라면 더 빨리 지금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왜 윈도에 집중하지 않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웠을까.
사람은 누구나 과거에 좋은 결과를 냈던 ‘성공 공식’을 재활용하고 싶어 한다. 예를 들어 협력업체를 심하게 쪼아서 단가를 성공적으로 낮춘 경험이 있는 기업의 구매부서 직원은 이러한 방식을 다른 협력업체들에게도 적용한다. 또 수 십 번 거절당하면서도 계속 찾아가서 영업한 끝에 결국 물건 팔기에 성공한 영업사원은 앞으로도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는 정신으로 열심히 상대를 설득하려 들 것이다.
해봤으니까 편하고 성공을 맛봤으니까 쉽다. 기업에서는 ‘베스트 프랙티스’라는 이름으로 이를 장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이건 기업이건 국가건 이러한 성공 공식을 반복적으로 적용하다 보면 다른 역량이나 가능성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구매부서 직원은 쪼지 않고 단가를 낮추는 논리 개발에 소홀해진다. 열심히 돌아다녀본 영업사원은 스마트하게 일하는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러다가 기존의 성공 공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면 새로운 역량을 개발하는 데 소홀했던 개인이나 조직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마이크로소프트에겐 이 성공 공식이 바로 윈도였다. 그래서 내려 놓기가 그렇게도 어려웠던 거다.
과거의 성공 경험에 집착하거나 가지고 있는 역량을 활용해 성과를 내는 데 익숙해지면 새로운 대안이나 가능성 찾기를 게을리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특성이다. 그래서 이를 가리키는 용어도 다양하다. 제임스 마치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를 ‘성공의 덫(Success Trap)’이라고 했고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휴브리스(Hubris)’라고 했다.
캐나다의 몬트리올 HEC 대니 밀러 교수는 ‘이카루스 패러독스(Icarus Paradox)’라고 불렀다. 그리스신화에서 이카루스는 밀랍으로 만든 인조 날개 덕분에 하늘을 나는 데 성공하지만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간 나머지 밀랍이 녹아 버린 것에 빗대 이름을 붙였다. 기업이 성공요인에 안주하다가 그 성공이 실패요인으로 반전되는 상황과 같다. 조금씩 결은 다르지만 이 용어들은 성공에 안주하다가 세상이 변하면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망한다는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하지만 인간이나 기업, 국가에겐 변화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변화에는 자기를 부정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성공적일수록 더 그렇다. 잘 되고 있는데 굳이 뭔가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재기가 시사하는 바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필자 김선우
-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인문지리학과 졸업
- 워싱턴대(시애틀) 경영학 석사
- 동아일보 기자
- 새로운 삶을 발견하기 위해 현재 미국 시애틀 근처 시골에서 작은 농장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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