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에 민감한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자리를 잡지 못한 서비스 중에는 스냅챗(Snapchat)이 있습니다. 베이비 필터를 제공하면서 한때 인기를 끌었으나, 그 이후로는 이용자가 계속해서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다릅니다. 스냅챗의 현재 주가는 약 52.36달러로 지난 3월부터 계속 상승세에 있습니다. 주가 상승 원인은 이용자 증가, 실적 개선 등이 꼽힙니다만 스냅챗이 집중하고 있는 서비스의 잠재력도 있습니다. 바로 AR(Augment Reality) 렌즈입니다.
AR이 세상에 소개된 지 오래된 지금 시점에 무슨 잠재력이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냅챗에서 제공한 AR렌즈는 단순 재미를 넘어 실제 퍼포먼스를 만들어냅니다. 글로벌 스포츠 음료 게토레이는 슈퍼볼 기간에 AR 렌즈를 캠페인에 사용했는데, 렌즈 조회수는 1억 6천 8백만, 소비자들의 구매 의향은 8%나 증가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반드시 구매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소비자 데이터를 수집하는 채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로레알이 AR 필터를 이용해서 소비자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신제품을 개발한 사례는 이미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다른 글로벌 SNS 또한 AR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은 Spark AR Community를 통해 AR을 제작하는데 기술적인 문제를 토론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으며, 틱톡(Tiktok)은 올해 ‘AR 브랜드 이펙트’를 출시하고 AR광고 시장에 뛰어들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현재 디지털 마케팅/광고 시장에서 페이스북, 틱톡, 스냅챗 등이 주는 영향을 생각하면 가까운 미래에는 AR이 주요 마케팅 툴(tool)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브랜드 경험은 소비로 이끌고
나이키(Nike)는 AR을 이용해 어떤 경험을 주고 그것을 세일즈로 이끌어내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입니다. 2018년 나이키는 마이클 조던의 덩크 콘테스트 우승 30주년을 기념하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스냅챗과 손잡고 실제 코트 위에 마이클 조던을 AR로 구현한 것입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마이클 조던을 탭하면 덩크 콘테스트 시절 신었던 Air Jordan III를 구매할 수 있는 링크로 안내했습니다. 23분만에 신발은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명품 브랜드의 AR활용 사례도 있습니다. 신발을 간접 착용하는 경험을 AR로 제공했던 구찌(Gucci)는 이제 향수까지 그 범위를 확장했습니다. 올해 새롭게 출시된 ‘Bloom Profumo di Fiori’ 향수를 홍보하기 위해 스냅챗과 협업하여 ‘꿈의 정원(garden of dreams)’ 이라는 AR 렌즈를 선보였습니다. 렌즈를 통해 정원을 입장하며, 정원 내에 숨겨진 5가지 향수를 찾게끔 설계되어 있습니다. 렌즈 이용 시 ‘구매하기’ 버튼을 이용해서 구매 페이지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입장권이 되기도
AR렌즈는 콘텐츠를 전달하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나이키 브라질은 올해 ‘Air Max 2090’ 캠페인 일환으로 AR렌즈를 사용해서 아직 미공개된 아티스트들의 음악, 인터뷰 비디오를 오픈했습니다. 콘텐츠 오픈에 AR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와 닿지 않습니다. 먼저 나이키 마이크로 사이트를 이용해서 AR 렌즈에 접속할 수 있는 코드를 제공했습니다. 이 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접속하면 AR렌즈를 사용할 수 있는데, Air라는 이미지를 살려 하늘에 AR렌즈를 비추면 구름 모양의 Air MAX를 찾을 수 있게 됩니다. 해당 이미지를 클릭하면 숨겨진 콘텐츠가 개방되는 방식입니다. 구름 모양의 Air MAX가 일종의 입장권이 된 셈입니다.
AR은 사회적 이슈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보통 기부를 유도하는 캠페인은 대부분 비슷한 톤을 가지는데, 어려운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마음을 울리는 음악과 멘트로 마무리하는 식이지요. 상황에 대한 공감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효과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진부합니다. 주류 기업인 디아지오(Diageo)는 AR로 색다른 시도를 했습니다. ‘The Balance Challenge’라고 명명된 이 캠페인은 인스타그램의 AR필터를 이용해서 제시한 포즈를 취하면 되는 간단한 캠페인입니다. 다양한 포즈로 물 그릇을 들고 있어야 하는데,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사실 이 캠페인은 연말, 명절에 술을 많이 마시고 난 뒤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지 챌린지로 제공한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재미로만 볼 수 없는 것이 이 필터를 켜고 활성화된 ‘기부’ 스티커를 누르면 알콜 중독자 치료 또는 물부족 원조를 주로 하는 단체에 기부할 수 있도록 연결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AR은 손쉬운 것이 아니다
사실 AR은 접근이 쉬운 도구는 아닙니다. 우선 제작 시간이 문제가 됩니다. 기술적인 요소가 들어가기 때문에, 보통 제작도 1~2개월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구현하고자 하는 효과가 복잡하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디지털 캠페인은 실시간으로 광고도 바꾸고, 일정이 급하게 수정되는 경우도 많아, 긴 제작 시간은 부담이 됩니다. 그렇다고 제작비가 저렴하지도 않습니다. AR렌즈 하나 제작에 보통 1~3천만원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되면 마케터는 가성비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만들어도, 유저가 사용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사용 독려를 위해 AR 홍보 캠페인을 별도로 진행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결국 제대로 된 효과를 얻기 위해 AR제작 외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때문에 AR 캠페인을 생각한다면, 정교한 설계가 필요합니다. AR은 재미있는 것이니까 같은 수준으로 접근하면 돈과 시간만 낭비될 뿐입니다.
2019년 디지털 마케팅 서밋에는 독일 아우디 본사에서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및 세일즈 미디어 책임자를 역임한 요그 디잇츨(Jorg Dietzel)이 연사로 나왔습니다. 그는 디지털 시대에는 사용하는 플랫폼과 내용, 형식이 맞는 것이 중요한데 대부분의 회사들은 이를 고려하지 않고 일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유튜브 초창기 시절을 떠올려보면 확실히 그렇습니다. 초기만 해도 동영상이라는 것은 그저 TV광고를 유튜브에서 다시 한번 노출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TV와 유튜브를 영상이라는 유사 미디어로 생각했을 뿐, 전혀 다른 플랫폼이라는 인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가요? 유튜브는 물론 인스타그램, 틱톡 등 각 플랫폼에 맞춰 내용도, 포맷도 다르게 만드는 브랜드가 많아졌습니다. AR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캠페인은 브랜드 체험에 그치지 않고, 그것의 소비까지 이루어지도록, 하나의 여정입니다.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수많은 방해요소를 제거하고, 재미와 경험과 감동을 줘야 하죠. 그 여정에서 AR은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브랜드의 간접경험, 재미, 감동, 어쩌면 구매 단계에서 쓰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AR 캠페인의 설계가 브랜드의 목적, 캠페인이 풀어내고자 하는 스토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소비자는 기꺼이 또다른 현실에 입장하기 위해 브랜드 AR을 사용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주목할 만한 AR 캠페인이 등장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출처 <또다른 현실 AR로 초대합니다. 입장권 AR을 켜세요> story by 배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