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생 후기

포스텍 영재 기업인 교육원에서의 2년간의 여정을 마치며...

사업기본과정 4D 오프라인교육|
11기|
신지원|
작성일 :
2022.01.26 02:48

이번 오프라인 교육은 지금까지의 교육들은 그냥 맛보기였다는 것을 알려주듯 정말 끝판왕이었다. 교육원에서 2 배웠던 내용들을 총동원해서 프로젝트를 진행시켰는데 그래서 그런지 지난 3D까지의 오프라인들 교육보다 전체적으로 빡셌다. 이번 캠프는 전들과 다르게 캠프 시작 준비해야 것들이 있었다. 4D 온라인 교육 기간 동안 사업 기획 초안서를 작성했었는데 우리 기수의 모두가 제출했던 초안서들 14개가 뽑혀 4D 오프라인 교육의 경영 시뮬레이션 쓰였다. 실은 포스텍 영재 기업인 교육원에 합격하고 오리엔테이션 4D 오프라인 교육에서 경영 시뮬레이션을 하게 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나는 초기 창업가로 뽑혀 팀과 함께 경영 시뮬레이션에서 우승하고 싶었다. 그래서 교육원 활동 자체가 너무도 재밌기도 했지만 경영 시뮬레이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교육원에서 하는 활동은 최대한 모두 참여하려 하였다. 과제들도 기한에 맞춰 모두 제출할 있도록 노력해서 결국 그랜드슬램을 해냈고 매일 교육원 웹사이트에 로그인을 크레딧 점수도 올렸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사업 아이디어가 14 뽑혀 14 명의 초기 창업가가 되었다. 그때의 뿌듯함은 글로 표현할 없을 만큼 엄청났다.



 



드디어 대망의 4D 오프라인 교육 , 14명의 초기 창업가들은 각각 자신의 사업 아이템에 대해 2 발표를 하였고 면접을 통해 함께 사업을 펼쳐나갈 공동 창업가들을 모았다. 경영 시뮬레이션은 최대한 현실과 비슷하게 되어있었는데 1일차에 바로 팀원들의 씨오들을 함께 모아 초기 투자금을 마련하였고 교육 2일차, 3일차에 14개의 기업들은 자신들의 사업 아이템에 대해 발표를 다음 당일 바로 투자도 받았다. 2일차에는 대출을 받을 수도 있다. 이렇게 우린 돈을 벌기도 했지만, 돈을 오히려 내야 때도 있었다. 1일차에는 사업 등록세를 내야 했고 5일의 교육 기간 동안 매일 기업 운영비도 내야 했었다. 또한, 대출을 했다면 이자를 갚아야 했고, 대출금을 상환하기도 해야 했다. 추가적으로 2일차와 3일차 아침에는 1 사업들을 홍보할 있는 기회가 주어 졌는데 이것 또한 씨오를 내야 가능했다. 이렇게 경제적인 부분에서 신경 것도 많았지만 우리의 사업에도 소홀히 수가 없었다. 5일간의 교육 일정 동안 3번의 발표를 준비해야 했고 그에 맞춰 피피티와 캔버스, 사업 제안서, MVP 여러 가지도 만들어야 했다. 피드백도 전보다 많이, 디테일하게 받았었는데 그러다 보니 서로 다른 여러 피드백들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배웠다. 피드백은 받을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적용을 하느냐, 하느냐는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우린 피드백과 생각 보다 적은 투자에서 사기가 꺾이긴 했지만 끝까지 버티면서 우리가 가려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발걸음을 내딛었고 결국 대출 없이 투자에만 의지하여 경영 시뮬레이션에서 흑자를 있었다.



 



이제 끝나서 하는 얘기지만 실은 내게 이번 경영 시뮬레이션이 정말 도전적이었다. 하지만 이유가 단순히 교육 내용이 어렵거나 시간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물론 항상 그랬던 것처럼 교육 내용도 난이도가 있었고 시간 또한 최대한 쪼개서 써도 촉박하다 못해 부족했지만 그보다 힘든 것이 있었다. 바로 팀장으로써의 역할이었다. 전에도 크고 작은 팀에서 팀장을 했었지만 이번처럼 프로젝트는 없었었다. 특히나 내가 직접 구상한 사업 아이템이다 보니 정이 갔고 팀원들도 면접을 통해 함께 모인 것이다 보니 내가 정말 있는 최대로 노력해서 우리 팀에 우승을 안기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팀원들과 함께 나아 가야 할지 모르겠었어서 나중에 쉬는 시간이나 그럴 혼자 머리를 쥐어 싸매고 후회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팀장 혼자를 팀이라 부르지 않듯이, 팀원들이 먼저 나서서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작업들을 분담하여 맡아주니 걱정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어느 팀처럼 우리는 결정에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로 부딪히기도 하였고 모두가 각자 생각했던 것을 다른 사람도 같이 생각했을 알고 작업을 진행하다가 서로 on
the same page 하느라 고생을 했던 적이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최대한 많이 서로와 소통을 하며 같이 나아갔다. 이러한 외에도 팀에 여러 위기가 있었다. 공동 창업자는 외부 일정으로 인해 교육 기간 뒤쪽에서 하루하고 반을 참여하지 못하였고, 다른 명은 피피티를 만들어주는 친구였지만 계속 컴퓨터가 에러가 났고, 다른 명은 교육 기간이 이어질수록 몸이 좋아졌었다. 이러한 걸림돌들이 우리의 여정에서 차례 있었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모두 우리의 디딤돌로 사용하여 그것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모두가 열정적으로 팀플을 하였고 결국 우리는 팀워크 상을 수상하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는 serendipity 뜻은 우연한 행복이다. 포스텍 영재 기업인 교육원은 내게 serendipity 실사와 같은 존재 이다. 포스텍 영재 기업인 교육원에 지원할 때가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슬럼프를 겪었을 때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홈스쿨링 하려고 했는데 결정을 , 학기 동안 내가 홈스쿨링에서 하려고 했던 , 메이킹을 실컷 했다. 세계 창의력 올림피아드 출전을 준비하며 메이커로써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었는데 나는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며, 올림피아드에서 경기를 하며 메이킹이 정말 분야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메이커는 분명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역할이었지만 내가 잘하는 일은 결코 아니었다. 그래도 일단 메이킹 하려고 학교까지 홈스쿨링으로 하고 있으니 뭐라도 해보자 싶어 청소년 센터에서 목공 인턴십을 하였다. 목공 인턴십을 하며 많은 것을 배웠고 즐거웠지만 여전히 생겼던 나의 꿈에 대한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럼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하며 길을 잃었다. 항상 살면서 분명한 목표 지점이 있었고 지점만을 보며 달려왔는데 지점이 갑자기 흔들리니 무엇을 해야 할지 막다른 골목에 부딪힌 이었다. 그러던 친구의 추천으로 포스텍 영재 기업인 교육원에 지원하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합격하였다. 그때까지도 일단 뭐라도 많이 경험해보자 라는 취지와 어릴 때부터
entrepreneurship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배워두고 싶어서 신청했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나는 이때의 결정이 인생의 최대 신의 하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육원에서 교육을 받으며, 강의들을 들으며 나는 최대 장점들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볼 있었다. 의외로 관심사와 장점들이 경영학과 길이 맞았고 교육원에서 공부를 하며 내가 항상 즐거웠던 것을 생각하니 점점 경영학에 관심이 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나는 경영학이라는 새로운 목표 지점을 찾았고 서서히 삶을 그에 맞추기 시작했다. 3주의 비즈니스 리더쉽 캠프도 신청해서 수강하고 온라인 고등학교에서도 원래 이공계 수업으로 채워 넣으려고 했던 계획을 바꿔 경제와 다방면으로 생각하고 글을 쓰게 하는 인문학 수업들도 이공계와 비율을 맞춰 넣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번도 빠짐없이 재밌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대학교도 경영학과로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살면서 한번도 내가 경영학과를 가고 싶어할 것이라고 생각 했다. 하지만 이젠 내가 경영학과 아니면 어딜가나 싶을 정도로 경영학과에 열정을 가지게 되었다.



 



교육원에 대해 이러한 개인적인 애착이 강해서 그런지 이번의 마지막 오프라인 교육 후의 헤어짐이 더욱 아쉬웠다. 비록 직접 만난 적은 번도 없지만, 따로 같이 함께 했던 순간들이 더욱 마음에 남았고 행복과 감사함과 영광은 그보다도 크게 마음속에 자리를 차지 하였다. 4D 오프라인 교육을 마무리하며 시상식을 마음이 아우성을 쳤다. 나는 내가, 우리팀이 상을 받을 것이라고 순간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한 다른 많은 친구들이 있었고, 모든 팀들이 누가 뛰어나다고 없을 만큼 모두 놀랍도록 대단했다. 그래서 나는 이름이 시상식에서 불렸을 , 우리 팀이 시상식에서 불렸을 머리가 완전 하얘졌다. “내가 맞게 들었는건가? 다른 사람을 불렀는데 내가 착각하는건가? 말이 되는건가? 지 뭐라고 말씀하시는거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수상 소감 발표 때는 내가 뭐라고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었는데 왠지 모르게 눈물이 같아서 그냥 짧게 말을 마쳐버렸다. 지금까지도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이 난다. 이윽고 모두와 정말로 작별 인사를 해야 때까지 참았던 눈물이 갑자기 터져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많이 민망하지만 실은 그냥 울음이 터진 정도가 아니라 오열을 했다. 원래 눈물이 없는 편이다. 울기 보다는 참는 것을 좋아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보거나 슬픈 이야기를 들어도 정도까지 감정 이입이 되진 않는다. 그래서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왔다는 표현도 그때까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마지막 인사에서 마이크를 켜고 말문을 순간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멈추고 싶어도 멈춰지지 않았다. 함께 웃고 울고 성장했던 11 친구들 얼굴과 어느 순간에서나 우리를 뒤에서 지지해주셨던 조교 선생님들 얼굴을 보니 더욱 눈물이 나와서 말이 나왔다. 눈물 때문에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같아  아쉬워 눈물이 더욱 나왔고 결국 끕끕거리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정말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슴이 벅차는 감동과 기쁨, 행복 느낀 순간이었고 그만큼 아쉽고 슬픈 순간이기도 하였다. 그때 터진 눈물은 쉽사리 그치지 않았고 결국 교육이 끝나고서도 울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게 그만큼 교육원과의 2년간 추억은 소중했고 삶의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포스텍 영재 기업인 교육원은 그냥 '교육원' 자체의 기관으로만 이루어진 같지 않다. 나와 함께 2년간 성장했던 우리 11 멤버들과 우리가 언제든 실패하고 다시 일어날 있도록 안전망을 세워주신 가장 든든하고 믿음직한 기둥, 조교 선생님들, 그리고 다른 모든 기수의 분들이 함께 어우러진 커뮤니티인 같다. 커뮤니티, 포스텍 영재 기업인 교육원에서 나는 꿈을 찾았다. 이젠 꿈을 이루는 것만 남았다. 그리고 꿈을 향해 나는 매일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앞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두렵지는 않다. 왜냐하면 내가 넘어져도 뒤에서 어떤 때에도 바쳐줄, 이미 바쳐주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용기를 가질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발자국을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