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실리콘밸리인가?
다음커뮤니케이션에 다니던 2007년 여름 코넬대학교에서 2주간 공부를 한 일이 있었다. 그 당시 코넬공대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막 실리콘밸리에 다녀왔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자주 실리콘밸리에 가느냐"는 질문을 한 일이 있다. 그러자 그는 "일년에 최소한 3~4번은 가려고 한다. 별일이 없어도 가서 구글이나 야후 같은 회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야 트렌드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말을 했다. 그때 그 대화가 내 뇌리에 남아있다. 이후 다음 본부장시절, 보스턴의 라이코스 CEO시절에도 기회가 되면 실리콘밸리에 자주 갔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1년반동안은 실리콘밸리에 살기도 했으며 2013년말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실리콘밸리를 자주 찾고 있다.
왜 자주 가는가? 코넬대 교수의 이야기처럼 실리콘밸리는 미래를 일찍 읽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2007년말 출장을 갔다가 당시 내가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아이폰 아니면 블랙베리를 쓰는 것을 보고 스마트폰시대의 도래를 직감하기도 했다. 그리고 회사(다음)에 복귀해서 "모바일시대를 빨리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번 출장에서 들른 샌프란시스코의 스타트업 컨퍼런스에서는 일론 머스크가 제안한 혁신적인 교통수단인 하이퍼루프 터널이 전시됐다.>
그런데 요즘 들어 또 다시 실리콘밸리에서 새로운 미래를 느끼기 시작했다. 3월초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 출장을 다녀왔는데 교통, 물류 그리고 자동차 산업까지 신기술과 공유경제의 거대한 츠나미가 세상을 덮치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우버와 테슬라 때문이다. 세상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
뉴욕 같은 대도시의 시내에서만 지내지 않는 이상 미국 출장에서는 렌터카가 필요하다. 대중교통수단이 부족하기 때문에 안그러면 도대체 다닐 수가 없다. 하지만 출장 갈 때마다 매번 차를 빌리고 반납하는 과정이 번거로웠다. 모르는 길을 운전하는 것도, 목적지에 도착해서 주차를 하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그런데 이번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출장에서는 처음으로 차를 전혀 빌리지 않고도 불편없이 지낼 수 있었다. 바로 우버 덕분이다.
내가 실리콘밸리의 남쪽인 쿠퍼티노에 살던 2013년 당시에는 우버를 써보고 싶어도 쓸 수 없었다. 우버는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 시내에서만 되는 서비스였다. 외곽도시에서는 당연히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가서 써보니 달랐다.
샌프란시스코에서 60km 정도 남쪽에 있는 마운틴뷰의 한적한 동네에서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소를 구했다. 그런데 좀 외진 곳이었는데도 우버로 차를 호출하면 매번 5분만에 차가 왔다. 동네 슈퍼 같은 5분짜리 짧은 거리를 가자고 해도 승차거부 같은 것도 없었다. 다만 고객의 수요가 많은 시간대에는 평소보다 더 비싼 요금(Surged price)를 내고 타야 한다. 하지만 감수할 만 했다. 기본요금이 택시보다도 저렴했고, 워낙 이용하기 편리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쿠퍼티노나 마운틴뷰에서 샌프란시스코 시내나 공항까지 가려면 팁을 포함해 100불에서 150불까지 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최소한 1시간 전에 택시를 예약해두고, 미리 나가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우버는 대략 50불이면 된다. 집에 앉아서 스마트폰 버튼을 누른 뒤 잠시 기다리고 있다가 차가 오는 것을 스마트폰에서 확인하고 바로 나가면 된다. 혁명적인 변화다.
하지만 우버의 가능성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대중교통수단마저 대체해버릴 가능성이 보였다고 하면 과언일까. 우버는 지난 12월부터 시애틀에서 우버홉(UberHop)이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시애틀 외곽에서 시내로 출퇴근하는 수요가 높은 노선 10개를 정해 카풀서비스를 운영하는 것이다. 정해진 장소에서 10분마다 차가 출발한다. 요금은 현재는 홍보기간이라 단 1불이다. (원래는 5불) 택시를 타면 가볍게 수십 불이 나올 구간을 승용차를 타고 단돈 1불에 출퇴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콜버스가 여기서는 이미 우버를 통해 유연하게 실행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이미 콜버스와 유사한 형태인 '채리엇버스’가 활발하게 운행되고 있다. 스마트폰 앱으로 신청해서 타는 버스다.>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50km이상 떨어져있는 마운틴뷰에서 우버 카풀서비스를 이용하면 20~25불에 갈 수 있게 됐다. 합승을 하는 조건인데 신청을 하니 5분만에 집 앞에 차가 오더니, 집 근처 5분 거리의 다른 장소에서 한 일본인을 태워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그리고 나를 샌프란시스코에 먼저 내려주고 동승한 일본인의 마지막 행선지로 향했다. 합승이라고는 하지만 효율적인 동선 최적화로 시간 상 손해 보는 것이 없었다. 혼자 택시를 타면 1백 불이 휠씬 넘게 나오는 거리다. (이 정도면 한국의 택시요금보다도 싸다) 또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는 우버풀을 통해 다른 사람과 합승하는 조건으로 7불의 고정요금으로 우버를 이용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가는데 요긴하게 이용한 Pool to SF서비스. 1인당 20불이면 갈 수 있어 버스, 기차 등 대중교통을 갈아타며 가는 것보다 시간도 절약되고 요금도 크게 비싸지 않았다.>
우버가 이렇게 할 수 있는 힘은 데이터와 네트워크에서 나온다. 매일 전 세계에서 수백만 번씩 사람들을 실어 나르며 쌓인 데이터를 가지고 이동 수요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에 우버 운전사를 배치시키고 값싼 요금을 매긴다. 여러 승객들의 이동경로를 최적화시켜 빠르게 합승시켜 1인당 요금을 더욱 낮춘다. 이렇게 하니 수요는 계속 증가한다. 또 공급에 비해 수요가 높으면 그 순간에 요금을 올린다. 이런 방식으로 우버 운전사들이 러시아워에는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데이터 없이, 일률적 요금체계로 영업하는 택시회사들이 우버를 이기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버 고객과 우버 운전사가 계속 늘어나면서, 우버 시스템의 효율성은 더욱 높아지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택시는 마치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처럼 보였다.>
택시회사들만 곤란을 겪게 될까. 사실 렌터카 회사도 마찬가지다. 차 없이도 이렇게 쉽고 싸게 다닐 수 있는 세상에 누가 렌터카를 빌리려 할 것인가. 기사를 검색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렌터카 회사들의 주가가 하락하고 있고 렌터카 요금 역시 내려가고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파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한 우버 운전사는 내게 "이제 누가 차가 필요하겠어요"라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스타트업 회사인 타파스미디어의 김창원 대표도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사람들이 차를 팔고 있어요. 필요가 없게 됐거든요. 차를 가지고 있으면서 내는 감가상각비, 보험료, 주유비용 보다 우버를 이용하는 것이 더 싸기 때문에 차를 처분하는 것이죠"라고 한다. 한술 더 떠서 고글로벌컨설팅의 노영희 대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우버를 금지하면 폭동이 날 거예요"란다. 그만큼 사람들이 우버의 편리함에 길들여졌다는 얘기다.
<사람 만나는 재미로 자투리시간에 우버를 한다는 샌프란시스코 토박이>
또 하나 흥미롭게 느낀 것은 내가 만난 우버 운전사들이다. 20회 가까이 이용했는데 무뚝뚝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친절했다. 다양한 성별, 인종, 연령대의 사람들이 나왔다. 심지어 한국 분도 계셨다. 절반 정도는 승객들과 대화를 즐겼다. 우버 운전사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돈을 버는 것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어서 즐겁다는 것이다. 한 백인 할아버지는 우버를 시작한지 한 달이 조금 넘었는데, 우리가 한국에서 온 첫 번째 손님이라며 좋아했다. 워낙 운전을 차분하게 하면서도 고객을 편하게 해줘서 마음이 편했다. 한 백인 청년은 "몸이 아파서 풀타임으로 일을 못하는 상황인데, 집에만 있지 않고 나와서 우버 드라이버를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니 정신 건강에 좋다"고 쉬지 않고 떠벌였다. 샌프란시스코 토박이라는 한 우버 운전사는 큰 트럭을 몰고 나와 "이 차 기름값 생각하면 별로 버는 것도 없는데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재미있어서 일이 끝나면 우버 앱을 켜고 몇 시간씩 운전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마지막 날 우리를 공항으로 데려다 준 필리핀계 여성은 "개인적으로 작은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데 우버를 통해서 스타트업 투자자들을 많이 만난다"며 "이들을 서로 소개해 주는 일을 한다"고 명랑하게 말했다. 그리고 나와 명함을 교환했다.
<일년 반 전에 우버에 갔을 때 대외협력담당 나이리와 찍은 사진. 당시 써둔 메모를 보니 당시 우버의 기업가치는 17조원이었다. 지금 우버의 기업가치는 70조원쯤 된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우버 본사에 지인을 만나러 잠깐 들렀다. 일년 반 전에 처음 가봤을 때는 막 새로운 사무실로 이전 했을 때였다. 한 층이 축구장보다도 큰 곳인데 2개층 정도를 확장해서 쓰고 있었다. 당시 한국인 직원이 1명 있다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이번에는 8명을 한 번에 만났다. 우버가 무섭게 인재를 빨아들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 대기업에 다니는 지인을 오랜만에 만났다. 그는 전기자동차인 테슬라 모델S를 타고 왔다. 그는 이 차를 2년 전 쯤 샀는데 이제는 가솔린 엔진차로는 도저히 돌아갈 수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차를 회사 주차장에서 충전하기 때문에 주유소에 갈 일이 없는데다 엔진이 없기 때문에 일년 내내 차를 정비할 일도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이 차에는 도대체 불만이 없어요" 그의 말이다. 내가 만난 많은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자동차업계도 곧 아이폰화 될 것이라는 말들을 했다. 자동차가 스마트폰처럼 된다는 얘기다.
서울에 있으면 이런 변화를 느끼기가 어렵다. 하지만 세상은 이렇게 빠르게 변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알파고 덕분에 인공지능의 파워를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인공지능에 투자하고 있다. 무인자동차는 사실 인공지능 로봇자동차다. 이런 자동차들은 이미 실리콘밸리의 거리를 누비며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우리 생각보다 휠씬 빨리 상용화가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준비가 안됐는데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는 것이 아닌가. 혁신 속도가 너무 빠른 실리콘밸리 회사들을 좀 말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들 회사들이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내야 할 세금을 회피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반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에는 규제도 많은데다, 보수적인 대기업들 중심의 한국경제는 이런 변화에 깜깜하다. 한국의 산업계는 앞으로 다가올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 이미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실리콘밸리에 갈 때마다 이런 걱정이 깊어간다.
[출처] [칼럼] 지금 실리콘밸리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