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CEO] ‘십대의 낙관’으로 췌장암 조기진단에 성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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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4.1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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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스티브 잡스를 죽음으로 몰고 간 ‘췌장암’은 암 중에서도 가장 독한 암으로 꼽힌다. 암 진단을 받고 5년 동안 생존할 확률이 7.6%에 불과하고, 치료해도 2년 안에 다시 발생하는 비율이 80% 이상일 정도로 치명적이다. 문제는 이 암이 상당히 커질 때까지 별다른 증상이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췌장은 위 뒤에 숨어서 몸통 깊이 자리해 엑스레이나 복부초음파 검사로 암을 발견하기 어렵다. 췌장암 환자의 85%가 암 말기에 진단받고, 생존 확률도 2%에 못 미친다는 게 불편한 진실이다.
그런데 2년 전 미국의 한 고등학생이 췌장암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기발한 기기를 만들었다. 1997년 미국 메릴랜드에서 태어난 잭 안드라카(Jack Andraka)가 그 주인공이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에 낙관으로 도전한 그는 1년 반이라는 시간 만에 값싸고 간단한 종이센서를 개발했다.
안드라카가 췌장암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그가 13세 때였다. 자신을 아끼던 아버지 친구가 췌장암으로 사망한 게 계기였다. 인터넷을 통해 췌장암에 대한 정보를 얻은 그는 췌장암 조기 진단이 놀라울 정도로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 60년 전부터 사용하던 췌장암 검사방법은 한 번 검사 받는 데 800달러가 들 정도 비싸고, 결과도 부정확했다. 그는 이를 대체할 새로운 방법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값싸고, 빠르고, 간단하고, 민감하고, 선택적이고, 외과적 수술이 최소화되는 센서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60년 동안이나 췌장암 진단에 진전이 없었던 이유는 있었다. 췌장암을 진단할 때 분석하는 혈액에 수많은 단백질이 들어 있다. 이 중 하나의 단백질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은 변화를 확인해야 췌장암을 진단할 수 있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안드라카는 더 나은 방법을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우선 구글과 위키피디아를 뒤져 췌장암에 걸렸을 때 혈액에서 발견되는 8000개 이상의 단백질 종류를 파악했다. 그 다음에는 이들을 각각 확인하면서 췌장암 발병 여부를 확정하는 단백질을 찾기에 돌입했다. 췌장암 발생 초기에 수치가 높아지면서, 다른 암이 아닌 췌장암에서만 징후가 나타나는 단백질이 목표였다. 이 엄청나게 단순한 과제를 반복하던 중 4000번째 시도에서 그 단백질을 찾았다. ‘메소텔린(mesothelin)’이라는 이름의 단백질이 췌장암이나 난소암, 폐암에 걸렸을 때 수치가 증가했던 것이다. 이제 이 단백질을 인식하고 췌장암을 진단하는 도구를 만드는 일만 남았다.
안드라카는 ‘탄소나노튜브(CNT)’로 암을 치료했다는 논문을 읽고, 항체 반응에 이 재료를 쓸 생각을 했다. 메소텔린에만 특정하게 반응하는 항체를 탄소나노튜브와 섞은 뒤 종이 위에 고정시킨 것이다. 이렇게 만든 종이센서는 항체가 메소텔린과 엮여 커지면 탄소나노튜브를 흐트러뜨리고 전기 전도에 따라 모양이 변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게 해줬다. 이로써 간단하게 암을 진단할 방법이 마련된 것이다.
이 계획을 구체화하기 위해 안드라카는 예산, 필요한 자재, 시각표와 절차를 준비해 존스 홉킨스대 등에 근무하는 200명의 박사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 달리 199명의 박사가 거절했고, 1명만이 혹독한 면접을 거쳐 그를 받아줬다. 이후 그는 7개월에 걸쳐 자신의 아이디어에 있는 결점을 보완했다. 그 결과 비용은 3센트만 들고, 검사시간은 5분밖에 안 걸리는 센서를 만들어냈다. 기존 췌장암 진단 방식보다 168배 더 빠르고, 2만 6000배 더 싸며, 400배 더 민감한 검사센서다. 게다가 100% 정확해 향후 췌장암의 생존확률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안드라카는 자신이 만든 센서에서 항체만 바꾸면 다른 질병도 얼마든지 진단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정한 질병이 발생할 때 나타나는 특정 단백질과 항체만 찾으면 여러 암은 물론 심장병, 말라리아, 에이즈 등 세상 모든 병을 싸고 빠르게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그는 몸을 한 번 훑으면 모든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꿈의 의료기’를 만들어 내기 위한 프로젝트에 몰두하고 있다.물론 안드라카의 발명에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11년부터 의학계에서는 안드라카의 발명품을 검증하려는 논문이 여럿 나왔으며, 그 중에는 췌장 검사 키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음을 지적하는 것도 있었다. 게다가 안드라카 본인은 ‘자유로운 정보 공유’를 중시했으나 췌장 검사 키트의 핵심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특허까지 신청한 점을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이 있다고 해서 정식 대학 교육을 받지도 않은 소년이 의학계의 오랜 난제를 해결하는 데 돌파구를 제공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성공한 비결에 대해 ‘인터넷 세상에 모든 것이 있다는 걸 발견한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넷으로 논문을 읽고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었던 것처럼 누구나 인터넷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도구보다 더 중요한 건 불가능에 도전한 낙관이다. 4000번이나 실패하면서도 계속해서 목표한 단백질을 찾았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해 세계적인 연구자의 문을 두드렸으며, 긴 시간 동안 꾸준히 하나의 목표를 좇았던 안드라카. 그의 성공에서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절대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다.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동아사이언스 <'십대의 낙관'으로 췌장암 조기진단에 성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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